우리는 살아가며 수많은 사건을 겪습니다. 과거의 경험이 현재의 선택에 영향을 미치고, 현재의 노력이 우리의 미래를 바꾸기도 하지요. 그렇다면 이러한 사건들이 우리의 ‘성격’에도 영향을 미치게 될까요? 드라마나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저 사람, 그 일 이후로 성격이 변했어”라는 대사는 사실인 걸까요?
미국 워싱턴 의과 대학의 토마스 홈스(Thomas Holmes)는 개인의 스트레스 지수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기 위해 ‘스트레스 측정 정도(Holmes and Rahe stress scale)’를 개발했습니다. 5,000명이 넘는 환자의 의료 기록을 조사해 일생에서 일어날 수 있는 사건들을 43개로 분류하고, 그에 따른 스트레스 지수를 산정한 것이죠. 이후 많은 연구를 통해 스트레스 지수가 300 이상일 경우, 향후 2년 이내에 80% 확률로 건강이 쇠약해진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일상의 사건이 스트레스를 야기하고, 건강상의 문제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는 건 분명해 보입니다. 하지만 성격과의 상관관계는 어떻게 알아볼 수 있을까요. 우선 가장 범용적으로 활용되는 성격 측정 검사 중 하나인 ‘빅 파이브 모델(Big Five Personality Traits)’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모델은 사람의 성격을 5가지의 주요 요소 -△신경성(N; Neuroticism)↔정서안정성(ES; Emotional Satbility) △외향성(E; Extraversion) △경험에 대한 개방성(O; Openness to Experience) △우호성(A; Agreeableness) △성실성(C; Conscientiousness)- 로 측정합니다.
신경성은 일상에서 힘든 경험을 했을 때 불안, 적대감, 스트레스 민감성 등 부정적 정서를 얼마나 자주 경험하는지에 대한 요인입니다. 나머지 4개의 요인은 각각 그 자체로 독립적인 개념이지만, 신경성은 정서안정성과 대비되는 개념으로 사용됩니다. 신경성과 정서안정성은 양극단에 위치해, 신경성이 높아질수록 정서안정성이 낮아지는 반비례의 모습을 보이기 때문입니다.
외향성은 사회 및 타인과 활발하게 상호작용하며, 사교성이 뛰어나고 자극과 활력을 추구하는 성향입니다. 개방성이 높은 사람의 경우 고정관념을 타파하는 경향, 다양성에 대한 욕구 등이 있으며, 우호적인 사람은 타인을 쉽게 의심하지 않고, 공동체적 속성이 두드러집니다. 높은 성실성의 사람은 목표 성취를 위해 성실히 노력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미국심리학회(APA)에 실린 한 연구는 빅 5 모델을 바탕으로, 일생의 사건과 성격의 상관관계를 연구했습니다. 2008년부터 9년간 네덜란드 사람 1만 3040명을 대상으로 삶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매달 조사하고, 매년 성격검사와 삶의 만족도를 측정한 것입니다. 그렇게 도출된 결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① 배우자 사별 (100점): 첫해는 삶의 만족도가 낮았으나 점차 회복되고 성격 측면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② 이혼 (73점): 개방성은 높아졌지만 삶의 만족도는 낮아졌습니다.
③ 장애(53): 사고에 의해 발생한 후천적 장애는 외향성, 성실성, 정서안정성, 삶의 만족도가 모두 낮아졌습니다. 다만 선천적으로 발생한 발달에 의한 장애는 삶의 만족도 부분에서 다소 낮아졌으나, 성격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④ 결혼(50점): 성실성, 정서적 안정, 삶의 만족도가 높았고 개방성은 다소 낮았습니다.
⑤ 실업(47점): 삶의 만족도와 정서안정성이 다소 낮았지만, 60개월 분량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궁극적으로는 성격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⑥ 출산(39점): 성실성과 개방성이 다소 감소했지만, 삶의 만족도는 상승했습니다.
⑦ 취업(26): 성실성, 정서안정성, 삶의 만족도가 향상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괄호 안의 점수는 앞서 소개해 드린 ‘토마스 홈스의 스트레스 지수’를 동일한 사건에 맞춰 임의로 넣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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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적으로 볼 때 성격 변화에 영향을 미치는 사건은 △이혼 △사고에 의한 장애 △결혼 △출산 △취업 등이었습니다. 사고에 의한 장애를 제외한 나머지 사건들은 개인의 심리적 책임을 촉발해 성숙한 변화를 초래한다는 데 공통점이 있습니다. 출산이 가까워질수록 정서적 안정성이 증가하고, 취업을 열심히 준비하는 동안 성실성이 증가하는 것을 예로 들 수 있지요.
실험 결과가 보여 주듯, 성격은 유전에 의해 고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직장, 사회적 지위나 역할, 관계에 따라 개인의 성격은 충분히 달라질 수 있습니다. 브렌트 로버츠(B. Roberts)는 이를 상황적 요인의 영향뿐만 아니라, 그 요인에 대한 개인의 인지 방식이 성격 차이와 변화를 가져온다는 ‘사회 투자 이론(Social Investment Theory)’으로 설명했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어릴 때 형성된 성격이 잘 변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과격한 표현이지만,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야”라는 말도 있지요. 하지만 우리가 의도하지 않은, 우리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사건이 발생했을 때 어떻게 대응하는지에 따라 성격은 변화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내가 해결할 수 없는 스트레스로 괴로울 땐, 원인에 지나치게 집착하기보다 그 스트레스를 어떻게 다룰 것인지에 대해 집중해 보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