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HD, 왜 약을 먹어도 나아지지 않나요?

진료실에서 ADHD를 처음 진단받는 아동을 볼 때와 성인을 볼 때는 다소 차이가 있습니다. 아동의 경우에는 부모님과 함께 다양한 주 호소 증상(산만하다, 장난을 참지 못한다, 수업 시간에 집중을 못한다,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한다.)을 가지고 내원합니다. 대개 보호자 분들은 충동적이라는 말을 공격적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ADHD 아동에 대하여 못된 말썽꾸러기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계신 경우가 많아서 ADHD 진단을 받더라도 납득하기 어려워하시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래서 치료적 개입까지 가는 데도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기도 하지요.

반면 성인의 경우에는 요즘 매스컴에서 다양한 정보를 접하고 “제가 ADHD인 것 같아요.”라는 확신을 가지고 오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빨리 약을 먹고 자신을 고통스럽게 하던 부분들, 즉 중요한 약속을 잊거나, 해야 할 일을 뒤로 미루거나, 사람들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말실수가 잦다거나 하는 부분들이 빨리 개선되기를 바라시기도 합니다.

ADHD 진단에 대하여 일단 납득하게 되면, 특히 나이가 많을수록 빠르게 약물치료를 시작하게 됩니다. 약물치료를 하면서 자주 듣게 되는 질문 중의 하나가 “왜 약을 먹어도 나아지지 않죠?”라는 질문입니다.

좀 더 질문을 구체화시켜 보면 ‘전보다 나아지기는 했는데 내가 기대한 정도는 아니다.’(예: 자리에 앉아 있는 시간은 길어졌지만 스스로 알아서 공부하려고 하지 않는다.), ‘나아진 점은 분명히 있지만, 내가 바라는 그 점은 나아지지 않았다.’(학교에서는 칭찬받는데, 집에서 엄마에게 말대꾸하는 것은 여전하다.) 또는 ‘전혀 나아지지 않고 오히려 더 안 좋아졌다.’(착해지지는 않고 짜증만 낸다.)는 경우도 있습니다. 



저는 ADHD에 대하여 설명을 해드릴 때 “ADHD는 사람의 기질과 성격의 일부처럼 생각하시라.”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모두 다른 기질을 가지고 있고, 거기에 환경의 영향을 받으면서 성격이 형성됩니다. ADHD는 그 과정에 영향을 줄 뿐이지요. ADHD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겁이 많은 ADHD 아동과 호기심이 많은 ADHD 아동, 성취욕이 강한 ADHD 아동과 눈에 띄는 것을 싫어하는 ADHD 아동은 모두 다른 특성이 있습니다. 사람 원래의 특성을 ADHD 증상이라고 고쳐야 한다고 생각하고, 약을 먹으면 그 특성이 바뀔 것이라고 생각하면 매우 실망하게 됩니다.

진료를 오는 아동 중에 호기심이 많고 남에게 인정받는 것을 좋아하는 영리한 ADHD 아동이 있었습니다. 아동의 어머님은 남에게 폐를 끼치는 것, 튀는 것을 싫어하고 규칙을 따르는 것을 중요시하는 분이었지요. 어머님은 기질이 다른 아이를 키우면서 늘 조마조마하고 불안해하셨고, ADHD 진단을 받았을 때 오히려 안도하셨습니다. 그동안 이해하기 어려웠던 아이를 이제야 이해할 수 있고 고쳐 줄 수 있다는 마음이 드셨기 때문이지요.

투약하면서 아이는 충동적인 행동도 조절되고 성적도 우수한, 남들이 보기에는 괜찮은 아이로 잘 크고 있지만 어른의 말에 바로 수긍하지 않고 자신이 납득이 되어야 따른다거나 남들 앞에서 자신이 잘하는 것을 뽐내거나, 질문이 많은 점은 여전히 있습니다. 다만 눈치를 보고 전보다 적당한 선에서 멈추는 자기 조절 능력이 전보다 좋아졌습니다.

어머님은 ADHD 약을 먹으면 아이가 ‘엄마처럼 예의 바르고, 남에게 피해를 안 주는 착한 아이’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여 처음에는 실망하셨으나 계속 진료를 보고 부모 교육도 받으시면서 ‘아이의 특성과 내 특성이 다른 것이고, 그것이 잘못도 아니며, ADHD 약으로 치료해야 하는 증상이 아니라 그 아이의 원래 성격’이라는 것을 인정해 주고 계십니다.


성인의 경우에는 ‘학업의 부진’, ‘대인관계의 어려움, ‘이유 없는 불안’, ‘중독 증상’ 등이 ADHD 약을 먹으면 빠르게 나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가 생각보다 효과가 부족하여 실망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는 안타까운 측면이 있는데, 사실 현재의 만족스럽지 못한 모습이 유년기의 ADHD 증상과 관련이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어릴 때 잦은 실패로 자존감이 낮아져 있거나, 부정적인 피드백을 받아서 대인관계에서 자꾸 주눅이 드는 경우입니다.

또한 유년기에 학습을 통해서 자신만의 공부 방법을 가지고 있거나, 규칙적인 생활 습관을 가지는 것이 중요한데 약을 먹는다고 해서 바로 이러한 생활 습관이나 업무 요령이 생기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ADHD 투약을 시작했을 때 장점은, 노력의 결과가 더 좋아져 효율을 높여 주고, 노력하면 긍정적인 결과가 나오니, 계속 노력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어 준다는 점입니다. 

마지막으로 현재 ADHD 증상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증상 때문에 지속적인 적응의 어려움이 발생하여 우울장애, 불안장애 등이 공존하고 있다거나 부모님과의 관계가 이미 좋지 않은 상태인 경우에는 약물치료만으로는 개선이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아이의 입장에서는 ADHD 증상으로 인해 주변 사람들에게, 특히 부모님에게 꾸중을 듣고 억울한 마음을 가지고 있거나 반항적인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ADHD 약물치료 외에도 추가적인 항우울제, 감정조절제 등이 필요할 수 있으며, 가족치료가 동시에 진행되어야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 부모님께서 왜 약을 먹어도 나아지지 않냐고 채근하거나, 가족 관계의 의사소통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 점은 인정하지 않고 모두 아이의 ADHD 때문이라고 생각하신다면 ‘약을 먹어도 착해지지 않고 오히려 더 나빠졌다.’는 경우가 될 수도 있습니다.

ADHD 치료에서 약물치료는 매우 중요한 부분이지만, 동시에 주변 사람들의 이해와 도움, 다른 치료적 개입이 없이는 그 효과를 발휘하기 어렵기도 합니다. 이 약을 먹느냐 마느냐를 결정하셨다면, 이제 어떻게 그 효과를 충분히 발휘할지도 함께 의논하는 진료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