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할아버지는 왜 일찍 돌아가신 거예요?”라고 묻는 어린 딸의 질문에 부모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할아버지께서 담배를 많이 피우셨거든. 해소병으로 돌아가셨단다. 담배를 정말 많이 피워서 벽지가 이렇게 노랗게 변한 거야.”
도배를 새로 하지 않은 옛 한옥집 안방 벽지는 정말 노랗게 색이 바래 있었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해소병이 뭔지 몰랐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그 병이 만성폐쇄성폐질환(COPD)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담배 연기가 아닌 색이 바래 버린 벽지마저도 해를 끼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훨씬 더 나중의 일이었습니다.
간접흡연(secondhand smoke)의 위험
흡연이 많은 질병과 사망의 주된 원인이라는 것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흡연은 흡연자 본인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담배에서 뿜어져 나오는 연기를 마셔서 담배를 피우는 것과 같은 영향을 받는 것을 간접흡연(secondhand smoke)이라고 합니다. 세계보건기구 WHO의 최신 보고서에 따르면 담배 사용으로 매년 800만 명 이상 사망하고 있습니다. 그중 700만 명이 직접흡연, 약 120만 명의 비흡연자가 간접흡연에 노출되어 사망한다고 합니다. 간접흡연에 의해 노출되는 유해물질은 수천 가지인데 이 중에는 비소, 벤젠, 크롬 같은 발암성 물질도 포함돼 있습니다. 이런 물질들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비흡연자도 폐암, 후두암 등이 생길 수 있습니다.
실제로 미국 공중보건위생국 보고서에서는 비흡연자들이 흡연자와 함께 사는 것만으로 폐암 위험이 20~30% 높아진다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소아에서는 천식이 악화되거나 폐렴이 생길 수 있고 성인에서는 심뇌혈관질환의 위험도 높입니다. 이러한 간접흡연은 이제는 너무나 익숙해진 개념이고 많은 사람들에 이에 대해 잘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연기를 마시지도 않았는데?
직접 담배를 피우는 것이나 간접흡연뿐만 아니라 다른 경로를 통해서도 담배의 영향에 노출될 수 있다는 연구들이 보고됐습니다. 직접 담배 연기를 마시지 않아도 흡연의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겁니다. 이 개념이 등장한 건 생각보다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흡연으로 발생하는 유해물질 가운데 많은 가스 형태의 물질이 흡연자의 몸이나 옷, 집안의 벽, 가구, 차의 시트, 천장 같은 곳에 달라붙게 되는데요. 이렇게 흡착된 화학물질이 다시 공기 중으로 배출되는 과정을 통해 흡연의 영향에 노출되는 것을 ‘3차 흡연(thirdhand smoke)’이라고 합니다.
흡착은 빠르게 이루어지지만 이 물질들이 공기 중으로 다시 배출되는 데는 수시간에서 수개월까지도 시간이 걸린다고 합니다. 또 흡연을 통해 생성되는 미세먼지도 표면에 흡착되었다가 다시 떠다니거나 기체 형태의 화학물질과 반응할 수 있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흡연이 끝난 후에도 오랫동안 흡연에 의한 오염물질에 노출될 수 있는 겁니다.
‘3차 흡연’이라는 단어 자체는 하버드 암센터에서 근무하는 위니코프라는 소아과 의사가 2009년에 ‘Pediatrics(소아과학)’이라는 학술지에 발표한 논문에 처음 등장했습니다. 그런데 이전부터 담배를 피웠던 공간에 있거나 다른 곳에서 담배를 피우고 온 사람과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유해물질에 노출될 수 있다는 사실이 여러 연구들을 통해 밝혀지기 시작했습니다.
3차 흡연, 얼마나 위험할까
2004년에 시행한 한 연구에서는 생후 1년 미만의 아기가 있는 가정에서 3차 흡연의 영향을 비교해 보았습니다.
① 가족이 모두 담배를 피우지 않는 가정, ② 흡연자가 있지만 집에서는 담배를 피우지 않는 가정, ③ 흡연자가 집안에서 담배를 피우는 가정 세 군으로 분류했습니다. 그리고 집안에서 먼지, 실내 공기, 실내 표면의 니코틴 농도와 신생아 소변에서 코티닌(니코틴의 주요 대사산물, 담배 연기 노출의 생체 표지자로 사용)을 측정했습니다.그 결과 흡연자가 있지만 집에서는 담배를 피우지 않는 가정에서 간접흡연의 노출 정도는 비흡연자 가정에 비해 5~7배 높았고, 집안에서 담배를 피우는 경우는 3~8배 높은 걸로 나타났습니다. 소변의 코티닌은 가족이 모두 비흡연자인 가정의 아기에서는 0.33ng/ml, 집 밖에서 흡연하는 가정의 아기에서 2.47ng/ml, 집에서 흡연하는 가정의 아기에서 15.47ng/ml가 검출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흡연자가 집 안에서 담배를 피우지 않더라도 실내 먼지, 표면, 공기 등을 통해 흡연의 영향에 노출될 수 있다는 것이 입증됐습니다.
2011년에는 흡연자가 이사를 나간 집에 비흡연자가 이사를 왔을 때 어떤 영향을 받는지에 대한 연구 결과가 발표됐습니다. 흡연자가 살았던 집의 먼지, 바닥 표면, 공기 속 니코틴 농도는 비흡연자가 이사 오면서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흡연자가 거주했던 집이 비흡연자가 거주했던 집보다 높았고, 새로 이사 온 비흡연자의 손가락 니코틴 농도는 흡연자가 살았던 집으로 이사한 경우가 비흡연자가 살았던 집으로 이사한 경우보다 높은 걸로 나타났습니다. 뿐만 아니라 흡연자가 이사를 나가면서 새로 이사 오는 사람을 위해 2달간 집을 비워두고 청소한 경우에도 이 영향은 지속됐습니다. 이후 2013년 미국에서 발표된 연구도 흥미롭습니다.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250개의 렌터카를 조사했더니 흡연 차량이 금연 차량보다 차량 내부 니코틴 농도가 2-4배 높았고, 발암물질 농도까지 더 높은 걸로 나타났습니다.
2019년 미국 연구진은 3차 흡연에 의해 호흡기 세포 유전자가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밝혀내기도 했습니다. 비흡연 여성들의 비강 상피세포를 채취해서 각각 3시간 동안 깨끗한 공기와 접촉 후 3차 흡연 상태에 노출시킨 뒤 유전자를 분석했습니다. 그 결과 단 3시간의 3차 흡연 환경 노출만으로도 건강한 비흡연자의 유전자 발현에 변화가 관찰됐습니다. 장기간 노출되면 암을 유발할 수 있는 산화 스트레스 현상도 관찰됐습니다.
3차 흡연에 노출된 사람 코 표피에서의 유전자 영향
(출처: Thirdhand Smoke Exposure and Changes in the Human Nasal Epithelial Transcriptome, JAMA 2019.)
3차 흡연으로 인해 니코틴 같은 물질이 다시 방출되는 것 외에도 실내 표면에 흡착된 니코틴이 공기 중의 아질산과 반응해 발암성이 높은 담배 특이 니트로사민(TSNA)을 만들어 인체에 악영향을 미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유해 물질들은 오랫동안 실내에 잔류할 수 있는 걸로 알려졌는데 흡연자가 거주하는 가정에서 금연 후 6개월이 지나도 오염물질이 존재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집에서, 특히 바닥 가까이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며 성인에 비해 체중이 적게 나가는 아이들에게 3차 흡연은 특히 더 위험할 수 있습니다. 서울대 연구팀이 6~11세 어린이 3만여 명을 조사했더니 3차 흡연에 노출된 경우 부모가 비흡연자인 경우에 비해 야간 기침, 만성 기침, 발작적 연속 기침 위험이 20%가량 높은 걸로 나타났습니다.
3차 흡연의 장기적 노출의 영향에 대해서는 아직 활발한 연구가 이뤄지지 않은 측면도 있습니다. 하지만 앞서 보았듯이 3차 흡연 자체가 해로운 물질에의 노출을 증가시킨다는 것은 분명히 입증됐습니다. 환기나 일반적인 청소를 통해서도 이 위험을 100% 제거할 수 없다고 합니다. 심지어 유해물질은 피부, 머리카락, 의류에도 흡착되기 때문에 가까운 사람이 위험에 쉽게 노출될 수 있고 흡연이 이뤄지지 않은 공간으로 위험이 옮겨올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담배를 끊은 사람들과는 상종하지도 말라는 이야기까지 있을 정도로 금연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속칭 ‘독해야’ 하고 그 과정이 쉽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담배를 피우는 분들이 본인의 건강뿐만 아니라 3차 흡연으로 인해 주변 사람들의 건강에까지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사실을 한 번쯤은 되새겨 주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