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산드라증후군] 배우자로부터 공감받지 못한다면?

여러분은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카산드라를 아시나요? 카산드라는 트로이의 마지막 왕 프리아모스의 딸로 아름답고 매력적인 여성이지만, 그녀를 사랑한 아폴론의 구애를 거절한 대가로 아무도 그녀의 말을 믿지 않게 되는 저주를 감당해야 했던 인물입니다. 카산드라는 예언 능력이 있었기에 트로이 전쟁을 예언했지만, 누구도 그녀의 말을 믿어 주지 않아 절망에 빠지게 되죠.

이처럼 배우자나 연인과 같이 깊은 유대감과 정서적 친밀감, 지지적인 관계를 맺어야 할 상대가 낮은 공감 능력을 갖고 있거나 감정 지능이 현저히 낮은 경우에 심리적 고통이 깊어지는 증상을 ‘카산드라증후군’이라 하는데요, 이 용어를 처음 사용하기 시작한 사람은 분석심리학파 심리치료사인 로리 레이튼 샤피라(L. L. Schapira)로, 그가 자신의 여성 환자들에게 나타나던 정신적 문제의 원인을 추적하던 중, 환자들이 자신을 정서적으로 지지해 주지 못하거나 공감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남편과의 관계에서 상당한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샤피라는 그의 저서 『카산드라 콤플렉스(Cassandra Complex)』에서 카산드라증후군의 진단 요건으로, 1) 이지적이지만 정서가 부족한 유형의 사람과 잘 풀리지 않는 관계, 2) 히스테리를 포함한 심신의 불안정이나 고통, 3) 이런 사실을 다른 사람에게 이해받고 싶어 해도 믿어 주지 않는 상황 등 세 가지 사항을 언급했습니다.

이러한 카산드라증후군을 불러일으키는 대표적인 파트너 유형으로는 아스퍼거 타입이 있습니다. 이들은 공감 능력과 반응이 부족하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것에는 취약한 반면, 자신이 관심 있는 이야기만을 일방적으로 하는 특성이 있어 상대방이 수용받는다거나 원활한 소통이 이루어진다는 느낌을 받기가 어렵습니다. 

또한 회피형 애착을 보이는 경우에도 상대 배우자가 카산드라증후군을 겪을 가능성이 높은데요, 회피형 애착이 형성된 이들은 어린 시절 주 양육자(대부분은 부모)와의 관계에서 발달시킨 회피 전략을 고착화하여 이후 친밀하고 깊은 정서적 교류가 요구되는 배우자와의 관계에서도 반복해서 회피 전략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죠. 이렇게 배우자와의 관계에서 지속적으로 회피하는 패턴을 보일 경우, 상대 배우자는 원하는 공감 반응을 얻지 못하고 애착이 불안정해지면서 배우자에 대한 분노와 무력감, 혼란감과 같은 심리적 고통을 겪을 수 있어 주의가 요구됩니다.

문제는 이처럼 아스퍼거 유형이나 회피형 애착이 있는 배우자가 커플 관계에서 어려움을 유발하는 자신의 성격적 특성이 무엇인지, 반복된 회피 전략이 커플 관계에 어떤 문제를 가져오는지, 그로 인해 상대 배우자가 무엇 때문에 힘들어하는지 잘 모를뿐더러, 엉켜 버린 실타래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배우자에게 원하던 공감이나 배려, 애정이 채워지지 않는 상태가 오래 지속될 경우 더 이상 상대에게 그 어떤 기대조차 하지 않게 되는 ‘탈애착’이 이루어질 수 있고, 자녀가 있다면 자녀의 정서나 애착에도 안 좋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관계 개선을 위해 양측 모두의 노력이 꼭 필요합니다.



먼저, 커플 사이에 카산드라증후군이 나타날 만큼 애착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안전기지가 되어 주기 위한 변화를 이루어 가야 하는데요,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서로의 안전을 위협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를테면 상대에게 대놓고 자주 화를 표출하거나 비난하고 공격적인 말투로 말하는 등 표면화된 공격성을 보이는 것은 물론, 상대에 대한 빈정거림이나 조롱, 끝도 없이 불평불만을 늘어놓는 것 역시 공격성을 표출하는 것으로, 상대에게는 위협적으로 느껴져 서로의 안전기지가 되어 주는 데 방해 요소가 되므로 자제해야 합니다. 

한편으로 부부간에 상호 반응성을 늘려 가는 것이 중요한데요, 여기서 상호 반응성이란 상호 대등한 관계에서 서로가 원하는 바에 부응하려는 태도를 말합니다. 두 사람 중 한 사람에 의한 일방적인 의견이나 강요가 방식이 아닌, 비록 내가 원하는 답이 아닐지언정 시간이 좀 많이 걸리더라도 만족스럽고 공유 가능한 부분을 늘리기 위해서 항상 상호 반응성에 신경 쓸 필요가 있는 것이죠.

다음으로 옳고 그름의 함정에 빠지기보다 상대의 감정이나 의사를 존중하는 태도를 견지해야 합니다. 카산드라증후군에 빠지기 쉬운 커플은 양쪽 모두 무척 성실하거나 책임감이 강하고 옳은 것을 ‘해야 한다.’는 규칙에 사로잡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옳고 그름이나 ‘~을 해야 한다.’는 강박적 신념을 고집하는 사이, 파트너의 감정을 읽는 데는 소홀히 함으로써 상대는 강요받는다거나 존중받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어 관계가 소원해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옳고 그름이나 해야 할 일들에 집착하기보다는 상대의 입장이나 감정을 헤아려 보는 공감 반응 훈련과 함께 나의 감정을 상대방에게 표현하고 이해시키는 과정을 통해 서로의 심리적 거리감을 좁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커플 사이에서 미움보다는 아직 애정이 훨씬 더 크거나 비교적 사이가 좋은 경우에는 작은 갈등이 단번에 큰 문제로 번지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장기적인 관계에서 상대와 함께하는 시간을 소홀히 하거나 갈등 상황에서 적극적으로 소통하기보다 회피만을 반복하고 감정적인 교류가 점점 부재해질 때, 편안하고 안정적인 관계에는 균열이 생기기 시작하고 계속해서 방치할 경우 관계는 파국으로 치달을 수도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소중한 나의 배우자의 마음이 지칠 만큼 지쳐서 생기를 잃고 말라비틀어지기 전에, 화초를 가꾸는 마음으로 애정과 정성을 다해 상대 배우자와의 관계를 아름답게 가꾸어 나가시기를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