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실의 선택을 받은 유목민의 음식 (1800)
중국 산둥성에서 유래한 자장면은 원나라 시절 몽골 유목민들이 즐겨 먹던 음식이었다. 청나라 말기, 서태후는 전쟁 중 피난길에서 우연히 맛본 자장면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당시 자장면은 현재의 진한 검은색과 달리 춘장을 적게 넣어 거의 하얀색에 가까웠다고 한다.
그는 북경으로 돌아온 후 그 집의 주방장을 데려와 자장면을 황실의 음식으로 격상시켰고 이는 북경 전역에 퍼져나갔다. ‘炸醬麵(자장미엔)’이라 불린 유목민의 음식이 황실의 선택을 받아 세상에 널리 퍼지게 된 것이다.
국경을 넘어 탄생한 최초의 자장면 (1883)
1883년 인천항이 개항하면서 산둥 출신 중국인 노동자들이 들어왔고, 그들의 손끝에서 우리에게 친숙한 자장면의 원형이 태어났다. 청일전쟁 이후 본국으로 돌아간 군인들과 달리, 남은 상인과 노동자들은 생계를 위해 중화요리점을 열었다. 그들이 야식으로 즐기던 볶은 춘장과 국수의 조합이 점차 한국인의 입맛에 맞게 진화한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후루룩 넘기는 검은 면발에는 두 나라의 역사가 짙게 묻어있다.

ⓒ공화춘
대한민국 최초 중국집 ‘공화춘(共和春)’ (1905)
인천 차이나타운의 중심에 자리했던 공화춘은 한국 중화요리의 출발점이다. 1905년 산둥 출신 화교 우희광이 ‘산동회관(山東會館)’이라는 이름으로 문을 연 이 식당은 1912년 중화민국 수립을 기념해 공화국의 봄이 왔다는 의미의 공화춘으로 개명했다.
당시 공화춘은 상류층이 즐겨 찾는 고급 청요리 전문점이었다. 이곳에서 한국식 자장면이 최초로 탄생해 대중의 입맛을 사로잡았고, 중화요리의 대중화를 이끌었다. 1984년 경영난으로 문을 닫은 공화춘은 20년간의 공백 끝에 2004년 새 주인에 의해 복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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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면발, 한국식 자장면 탄생 (1948)
1948년, ‘영화식품(전 영화장유)’의 ‘왕송산’ 사장이 대두와 밀가루에 캐러멜을 섞은 ‘사자표 춘장’을 출시하면서 오늘날 우리가 사랑하는 자장면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중국 본토의 자장면과 달리 캐러멜이 더해진 춘장은 한국인의 입맛에 맞는 단맛과 부드러운 식감을 선사했다. 이 독특한 춘장 덕분에 자장면은 검은색을 띠고 윤기가 흐르게 됐다. 현재 사자표 춘장은 한국 중국집 춘장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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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인스턴트 자장면 ‘짜파게티’ 올해 41살 (1984)
1984년 3월, 농심이 내놓은 ‘짜파게티’는 자장면을 집에서도 간편히 즐길 수 있게 만든 자장면이다. 당시 외식으로만 접할 수 있던 자장면을 올리브유를 첨가한 고급스러운 소스와 쫄깃한 면발로 한국인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출시 직후 폭발적인 인기를 끌며 한국인의 소울푸드로 자리 잡았고, 영화 [기생충]에서 소개된 ‘짜파구리’를 계기로 글로벌 시장에서도 큰 반향을 일으켰다. 현재 전 세계 70여 개국에 수출되며 한국 식문화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했다. 작년 출시 40주년을 맞아 농심은 ‘짜파게티 더 블랙’을 선보이며 지속적인 혁신과 소비자 소통을 이어가고 있다.
‘짜장면’ ‘자장면’ 표기법 변경 (1989)
외래어 표기법이 개정되면서 중국어 발음을 기준으로 ‘자장면’이 표준어로 지정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국민의 90% 이상은 ‘짜장면’이라는 표현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심지어 “자장면이라고 발음하는 사람은 국어학자나 아나운서뿐”이라는 농담이 나올 정도다. 이현 작가의 동화 [짜장면 불어요!]에서도 “불어서 퉁퉁해진 면발 같은 소리 하네. 자장며언? 그럼 짬뽕은 잠봉이라고 해야겠네?”라는 장난스러운 대사가 등장할 만큼 대중들은 바뀐 표기법에 여전히 익숙하지 않고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