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백질 중독, 지방 중독은 없지만 ‘탄수화물 중독’은 존재하는 이유

‘탄수화물 중독’이라는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그런데 ‘지방 중독’이나 ‘단백질 중독’이라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채소 중독’이나 ‘물 중독’이라는 말도 그렇게 많이 쓰이지 않는다. 다른 성분과 다르게 왜 유독 탄수화물에 중독이 되는 걸까? 또 탄수화물 중독에서 벗어나는 길은 있을까?

   
탄수화물은 인간이 진화의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영양소 중 하나다. 탄수화물을 주로 쓰는 우리 몸의 기관은 바로 뇌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 되기까지는 뇌가 가장 큰 역할을 했는데, 뇌에서는 포도당만 에너지원으로 쓴다. 포도당이 우리 몸에 상당히 중요한 이유다.
 
과거에는 포도당, 즉 당 성분이 그리 많지 않았다.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단맛 나는 음식은 명절이 아니면 거의 먹을 수 없었다. 그런데 산업 혁명 이후 탄수화물 식품을 대량 생산하면서 우리는 탄수화물을 너무 많이 먹게 되었고 심지어는 탄수화물에 중독되기에 이르렀다. 지금은 도처에 깔린 게 단 음식이다. 더욱이 요즘에는 탕후루처럼 극강의 단맛을 자랑하는 음식을 손쉽게 구할 수 있게 됐다.
 
케이크, 쿠키, 도너츠, 과자, 빵, 햄버거, 피자 등 밀가루 음식이나 설탕을 원료로 하는 음식 및 초콜릿 등 단맛이 강하게 나는 음식에는 단순당이 많이 들어 있다. 단순당은 섭취하자마자 바로 혈당을 빠르게 높이므로 섭취를 중단했을 때 마음이 불안하고 스스로 양을 줄이는 것이 힘들다이런 증상이 니코틴이나 마약 같은 금단 증상과 비슷해서 중독이라는 이름까지 붙은 것이다.


지방이나 단백질은 어느 정도 먹으면 더 이상 먹을 수 없다. 지방은 느끼해서 못 먹고, 단백질도 먹는 데 한계가 있다. 그런데 탄수화물은 어느 정도 먹고 멈추는 게 잘 안된다또 탄수화물을 먹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실제로 달거나 짜고 기름진 음식은 뇌에 존재하는 쾌감 중추를 자극한다. 이 과정에서 세로토닌이라는 행복 호르몬을 분비한다. 그래서 일시적으로 우울감이 줄어들고 기분이 좋아지는 느낌을 받는다.
 
다이어트, 직장생활, 인간관계 등으로 과도한 스트레스나 불안감, 초조함을 느끼면 신경 전달 물질인 세로토닌의 농도가 낮아지는데, 이를 높이기 위해서 고지방, 고열량, 고당분의 음식을 찾게 된다. 하지만 이런 효과는 매우 일시적인 것으로 금세 다시 우울해져서 또 다른 폭식을 부르게 된다.
 
이러한 과정이 반복되다 보면 도파민까지 자극한다. 탄수화물이 조금만 떨어져도 조바심이 나고, 탄수화물이 없으면 많이 힘들어지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탄수화물 중독의 사이클이다. 실제로 코카인에 중독된 뇌와 탄수화물에 중독된 뇌는 서로 비슷한 양상을 띤다. 탄수화물이 마약과 비슷한 작용을 일으킨다는 뜻이다. 나도 탄수화물 중독 증상을 보이는 환자를 많이 목격한다. 탄수화물이 없으면 힘들어하고 우울해하면서 계속해서 탄수화물을 찾게 된다.

성인이 하루에 섭취하는 탄수화물의 적정 비율은 총열량의 55~65%다. 탄수화물을 통해서 총 에너지의 70% 이상을 섭취하면 당뇨병이나 대사증후군 등 건강에 위험이 증가하기 때문에 건강과 다이어트를 위해서는 탄수화물의 비율을 낮춘 균형적인 식사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탄수화물 중독은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다음 체크리스트에서 확인해보자.
 

▢ 아침에 밥보다 빵을 주로 먹는다.
▢ 오후 3~4시쯤 되면 집중력이 떨어지고 배고프다.
▢ 밥을 먹는 게 귀찮을 때가 있다.
▢ 주위에 항상 초콜릿이나 과자 같은 간식이 있다.
▢ 방금 밥을 먹었는데도 허기가 가시질 않는다.
▢ 잠들기 전에 야식을 먹지 않으면 잠이 오지 않는다.
▢ 식이요법을 3일 이상 해본 적이 없다.
▢ 단 음식은 상상만 해도 먹고 싶어진다.
▢ 배가 부르고 속이 더부룩해도 자꾸만 먹게 된다.
▢ 방금 음식을 먹었는데도 만족스럽지 않다.


만약 이 항목 중에 3개 이상에 해당되는 경우에는 주의가 필요하다. 4~6개는 탄수화물 중독 위험성, 7개 이상은 중독을 의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