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보건기구의 발표에 따르면 음주는 암, 간경화, 췌장염, 심부전을 비롯한 200여가지 질병의 원인이 될 수 있고, 음주로 인한 사망은 5.3%에 이르며 특히 20~39세 사이의 연령에서는 13.5%에 달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미국과 유럽에서 시행한 몇몇 보고에서는 적당한 음주는 사망률이 오히려 줄어들었다가 그 수준을 넘어가면 사망률이 급증하는 U 혹은 J 모양의 곡선을 보인다며 오히려 적당한 음주는 심뇌혈관 질환의 보호 효과를 나타낼 수 있다고도 합니다 (그림1).
그림1. 미국 성인에서 음주 정도와 사망률과의 관계
이러한 효과의 기전으로 레드와인에 포함된 항산화물질을 이유로 들기도 하고 주종에 상관없이 음주로 인한 내피세포 기능 호전, 콜레스테롤에 대한 좋은 효과 등을 들기도 합니다(그림2).
그림2. 음주의 심혈관 질환 보호 효과의 추정되는 기전
만약 사실이라면 저를 비롯한 애주가들에게는 희소식이 아닐 수 없는데요. 적당한 음주가 심혈관 보호 효과가 있는가에 대한 여러 연구를 소개하고 그 결과를 어떻게 해석하고 실생활에 적용해야 할 지에 대해 함께 고민해보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 상관관계와 인과관계
미국심장협회에서는 적당한 음주가 심혈관 질환의 사망률을 낮춘다는 연구들에 대해 상관관계는 보이나 인과관계를 입증할 수는 없다는 입장입니다.
세계보건기구는 인과관계가 명확하지 않을 뿐 아니라 설사 있다고 하더라도 그 이득이 암을 증가시키는 해악에 비해 크다고 말할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즉 적당한 음주와 사망률의 감소는 상관 관계는 있으나 인과 관계는 명확하지 않다는 뜻입니다.
경제학 교과서 중 하나인 ‘맨큐의 경제학’에서 상관관계를 인과관계로 잘못 인식하는 경우를 크게 두 가지 사례를 통해 제시하였습니다.
첫 번째 사례는 정부가 암 사망을 줄이기 위해 통계회사에 조사를 의뢰했고, 회사에서는 가정 내 물건들을 일일이 조사하여 라이터 개수와 그 가족의 암 발생률 간 밀접한 상관 관계를 발견하였습니다.
이 결과를 토대로 회사는 정부에 라이터에 세금을 무겁게 부과하고 건강에 해롭다는 경고 문구를 부착해서 라이터의 소유를 억제해야 한다는 정책을 건의했습니다. 라이터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담배를 피울 가능성이 높고, 담배를 피운다는 사실이 암에 걸릴 확률을 높일 수도 있기 때문에, 흡연이라는 누락 변수를 일정하게 유지하지 못하는 라이터와 암의 상관관계는 인과관계를 입증할 수 없습니다.
두 번째 사례는 어떤 학회에서 범죄 문제에 대한 연구과제를 수행하여 강력범죄 발생 빈도와 인구 당 경찰 숫자가 밀접한 관계가 있어 경찰관을 줄여야 한다는 결론을 도출하였습니다.
이는 경찰이 늘어서 강력 범죄가 발생한 것이 아니고 강력 범죄가 증가하여 경찰관 수가 증가한 것으로 뒤바뀐 인과 관계의 오류입니다.
음주 역시 부유하고 건강에 투자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적당한 음주를 할 가능성, 와인과 함께 먹는 지중해식 메뉴가 좋은 효과를 줄 가능성 등을 배제해야 합니다.
따라서 적당한 음주가 심혈관 보호 효과와 인과 관계가 성립하는 지 여부를 보려면 음주와 효과 간 누락변수를 줄일 수 있는 방법과 인과관계의 선후관계에 대한 고찰을 통한 여러 고려가 필요합니다.
◇ 인과관계를 입증하기 위한 노력
인과관계를 가장 깔끔하게 입증할 수 있는 방법은 심혈관계 위험도가 비슷한 사람을 무작위 배정해서 한 군은 적당한 음주를 시키고 한 군은 음주를 못하게 하는 무작위 대조군 연구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연구는 윤리적으로도 문제가 될 수 있고 전체 인구를 대변할 수 없으며 많은 수의 사람에서 생애를 쭉 관찰하려면 너무나 많은 비용이 들게 됩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제시된 방법이 바로 멘델리안 무작위 분석입니다. 음주와는 관련이 있지만 심뇌혈관 사건과 무관한 유전자(alcohol dehydronase)를 도구변수로 설정해서 분석하는 방법입니다.
이 방법을 이용하여 연구한 논문들을 보면 알코올 분해 효소에 대한 유전자 변이가 있는 환자에서 음주 횟수나 과음의 빈도가 낮고 뇌졸중이나 심근경색증과 같은 심뇌혈관 질환이 유의하게 적게 생기는 것을 보여준 연구(BMJ 2014;349:g4164)도 있고 유전자로 보정하였을 때 U 모양이나 J 모양이 사라지면서 음주량이 많을수록 특히 고혈압 및 뇌혈관 사건이 증가하는 양상을 보이는 연구들이 있었습니다(Lancet 2019;393:1831-42, Eur Heart J 2013;34:2519-2528).
◇ 미국심장협회의 권고 및 실생활에서 적용
미국심장협회에서는 적당한 음주가 심혈관계를 좋게 한다는 명제를 인과 관계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심혈관계 효과를 보기 위해 음주를 하지 않는 사람이 음주를 시작하는 것은 권고하지 않았습니다.
저처럼 위스키를 마시면서 고단한 인생을 달래는 사람에게는 심방세동, 고혈압, 심부전의 위험을 경고하면서 절주를 권고했습니다. 즉 음주의 상한선을 설정하는 것입니다.
미국 국립 알코올 남용 및 알코올 연구소에서는 1 표준 음주를 순수 알코올 14 gram으로 정의하였습니다. 14 gram 용량을 술 종류에 따라 간략히 표현하면
5% 정도의 도수를 가진 맥주는 350ml 정도, 12% 정도의 도수를 가진 와인은 140ml 정도, 40% 정도인 위스키는 40ml 정도의 양입니다(그림3).
그림3. 표준 음주의 술 종류에 따른 용량
하루에 남성의 경우 2 표준(28 gram) 음주, 여성의 경우 1 표준(14 gram) 음주 이하로 음주할 것을 권고하였습니다.
과음은 남성의 경우 5 표준 음주, 여성의 경우 4 표준 음주로 정의하였고, 폭음은 2시간 이내로 과음 용량을 마시는 것으로 정의하였습니다. 문헌에 따라 다소 간의 차이는 있지만 1주일 간 순수 알코올 100 gram 이하 즉 7 표준 음주 이하를 권고하고 있습니다.
2022년 발표된 국내 연구에서 20~39세의 젊은 사람이 4년 간 권고 이상의 음주를 할 경우 뇌졸중과 혈전과 인과 관계가 성립하는 심방세동이라는 부정맥이 47% 정도 증가하는 것으로 보고하고 있어서 음주를 하더라도 상한선을 잘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현재까지의 연구들 그리고 여러 단체의 의견을 요약하면 음주는 건강에 해롭습니다. 권고 음주량은 심혈관 건강을 위한 약이 아니라 지키기 위한 상한선의 개념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저도 1주일에 위스키 6~7잔, 특히 50% 이상의 고도수 위스키는 5잔 이내로 제한하려고 노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