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 일이 반복적으로 떠오른다면?

지나간 일이 반복적으로 떠오른다면?

지나간 일 중 유난히 특정 기억을 반복적으로 되풀이하는 것을 반추(rumination)라고 합니다. 소가 여물을 먹고 소화하기 위해 되새김질을 하듯, 어떤 생각에 꽂히면 머릿속에서 계속 곱씹게 되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상념으로 이어져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때 내가 왜 그랬을까, 당시에 이렇게 했으면 좋았을 텐데, 그 사람은 나한테 도대체 왜 그랬을까’와 같이 지나간 과거를 반복적으로 되돌아보는 습관은 일반인에게도 보편화된 것으로, 반추 사고 자체가 고쳐야 할 증상은 아닙니다.

2016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 국민 1만 명을 대상으로 시행한 정신적 습관에 대한 조사에서 반추 습관을 보유한 비율이 82.4%로 높게 나타났는데, 정신질환자군보다 정상군에서 보유 비율이 높았습니다. 긍정적 반추는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정리하는 데 도움이 되며 성찰을 통해 자기 발전의 계기로 삼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강박적인 반추라면 자신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상황을 반복적으로 떠올리는 것이 부정적 감정을 증폭시키고 이것은 우울, 자기 비난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조절이 필요합니다. 반추가 침습적 사고(intrusive thought)처럼 머릿속에 들어오면 없애려 해도 없어지지 않고, 생각하지 않으려 하면 할수록 오히려 그 생각만 나는 상황을 겪게 됩니다. 반추 이후 피로감과 불쾌감만 남는다면 반추의 긍정적 효과는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이미 끝났고 돌이킬 수 없는 일에 대한 아쉬움, 후회, 미련에 대한 생각이 반복된다면 반추는 우리가 과거를 극복해 보고자 하는 노력임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생각하는 행위 자체를 통해 일말의 가능성을 점쳐보고 극복해 볼 수 있는 여지가 있지는 않았을지 상상해 보는 것입니다. 타인에 대한 생각이 반추의 주 내용이라면, 반복적인 생각을 통해 ‘내가 아니라 그 사람의 잘못’임을 확신하며 내가 상대보다 더 괜찮은 사람이라는 우월감을 얻고 싶은 것은 아닌지 살펴볼 필요도 있습니다. 부정적 반추는 우리의 에너지를 과거에 쏟게 함으로써 현재의 삶에 집중할 수 없게 만듭니다.

반추가 활성화될 때는 ‘내가 또 그 생각을 반복하고 있구나’라고 알아차리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미 지나간 과거의 일일 뿐입니다. 여기에 ‘왜 계속 이 생각이 나지, 이제 그만 떠올랐으면 좋겠다, 어떻게 하면 생각이 안 날까, 너무 괴롭다, 힘들다’와 같이 부정적 감정과 의미를 부여하고 판단하고 있는 사람은 나 자신입니다. 그저 객관적으로 떠오르는 생각을 지켜보고 흘러가도록 두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마치 초대하지 않은 불편한 손님이 왔을 때 괜히 그를 더 자극하고 힘들어하기보다 잠시 두고 보면서 그대로 나가길 기다리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일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근본적으로는 과거의 일을 우리가 어떻게 인식, 해석하고 받아들일지 고민해 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과거의 일이 현재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면 상담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자신이 경험한 삶을 이해해 보며 불완전한 자신의 모습을 잘 수용할 수 있게 된다면 새로운 관점으로 자신의 삶을 재구성해 나가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